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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사이트] 볼로냐의 도시재생 [문화 전반]

이야기/공간

by 지니공간 2020. 1. 2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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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이탈리아 볼로냐에 다녀왔다. 밀라노, 로마, 피렌체처럼 여행지로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지만, 볼로냐만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볼로냐 스파게티가 생각나는 이곳은 이탈리아 음식의 수도라고도 불리지만, 역사와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교육의 도시, 현자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볼로냐의 중심지에는 1088년에 세워진 유럽 최초의 대학이 있다. 이 곳은 불멸의 대작인 ‘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등이 졸업한 학교로, 중세시대부터 학문과 사상에서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을 선도한 곳이다.

 

 

볼로냐의 상징 회랑, '포르티코'

 

 

볼로냐는 중세 시대 도시의 모습과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특히 건축 양식에 있어선, 볼로냐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회랑 ‘포르티코’가 인상적이다. 포르티코는 건물의 외부에 지붕을 덮에 눈, 비 혹은 강한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외부를 내부화시킨 도시의 산책로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포르티코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하여, 중세시대에 자리잡은, 유럽의 여러 도시의 건축 요소이지만, 지금까지 볼로냐처럼 잘 보존 된 곳은 찾기가 힘들다. 볼로냐에 화랑이 이렇게나 많은 이유는 대학교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지방 곳곳에서 학업을 위해 모인 학생들을 더 많이 수용하기 위해 하숙집들에서 기둥을 설치해 그 위에 방을 올려 학생들을 받았다고 하니, 과연 교육의 도시답다.

 

 

실외를 실내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볼로냐의 상징인 이 포르티코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실외를 실내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카페 공간으나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현재 도심에 새로 건물을 지을 때도 포르티코를 만드는 것을 법으로 규정했다고 하니, 시기마다 각기 다른 건축 양식의 포르티코가 존재하는, 다시 말해 도시의 건축 자체가 살아있는 그 도시의 역사이자 박물관인 것이다.

 

 

 

볼로냐 2000 프로젝트


 

  사실, 이 도시가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볼로냐의 도시재생 2000 프로젝트 이후이다. 나 또한 이 프로젝트로 이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과거를 보존한 채 미래로 나아가는 창조적인 도시 재생을 이뤄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도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용했고, 정적이었다. 외관상의 모습은 수백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좀 더 현대적인 느낌의 외관을 기대하고 갔었던 터라, 약간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볼로냐의 도시재생은 외부가 아닌 ‘실내’에 있었다.

 

  대규모 문화예술 시설을 목표로 하는 볼로냐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볼로냐가 간직한 기존 건물들의 도시적-건축적 특징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기존 건물의 대부분은 주로 산업용 건물이라, 대규모 문화예술 시설을 기획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하지만, 볼로냐 시는 기존 구도심의 북서쪽에 오랫동안 자리한 제빵 공장, 도축장, 담배 공장, 소금 창고 등을 단계적으로 재활용하여 볼로냐 문화예술 지구를 조성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제빵 공장이 현대미술관으로


 

현대미술관으로 개조된 Mambo의 외관

 

 

볼로냐에서 도시재생을 느끼기 위해선 실내를 보아야한다. 도시 변화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볼로냐 현대미술관 Mambo’는 과거에 제빵 공장이었던 곳을 새로 개조한 곳이다.

 

1915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시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그 규모가 상당했지만, 상시적인 목적을 위해 건립되지 않았기에 20년이 지난 1935년에 문을 닫았고, 이후로는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화예술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2000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제빵 공장의 건물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제빵 공장은 단순하고 정형화된 공간 구성을 가지고 있어서 현대미술관으로 재활용하기에 좋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미술관은 설치미술과 대규모 전시를 위한 대형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높은 층고와 개방형 공간을 가진 제빵 공장은 현대미술관으로 개조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공장으로 사용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천장

 

 

  외관은 여느 다른 건물과 다를 게 없지만, 내부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탁 트인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제빵 공장의 흔적은 1층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남겨진 공장의 골조, 기둥 벽의 흔적은 이 공간이 과거에 공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래된 외관과 현대 미술관 특유의 하얀 벽이 이루어내는 대조 또한 인상적이었다. 현대미술관임을 강조하는 듯이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는 벽이 붉은 건물을 가진 오래된 도시의 이미지와는 상반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

 

 

  볼로냐의 도시 재생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변화를 이루어냈다는 데에 있다. 현재 시민들의 삶을 반영하면서도, 과거와 단절되지 않게 하는 볼로냐의 도시 재생 방식은, 낡은 것을 부수고 새 것을 짓는 것만이 도시재생의 방식일까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성공적인 도시재생이란 그 도시와 그 지역만이 가진 색깔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어떤 도시를 미래에 물려주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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