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니입니다.
오랜만에 '서울' 찾고 싶은 곳을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어른들에게는 '마을'에서 뛰어놀던 과거 유년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
아이들에게는 역사만화책 주인공처럼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만 같은 그런 곳입니다.
바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인데요,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 역사적 의의를 알리고,
근현대 서울 100년의 삶과 기억이 담긴 마을의 가치를 보전하고자
도시재생 방식으로 조성한 도심 속 마을단위 역사, 문화 공간입니다.
그럼, 저와 함께 시간여행하러 떠나볼까요?
입장료와 전시관람은 무료입니다.
다만, 체험 활동에는 체험비가 들 수 있고,
카드결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니 이용에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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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박물관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정겨운 옛 골목이 보이고,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담긴 여러 건축물이 보입니다.
마을 전체가 박물관인 곳으로, 조선시대의 한옥, 일제강점기의 가옥, 70-80년 대 슬래브 지붕 집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여러 건축물이 혼재되어 있지요.
우리는 산업화와 급격한 도시 개발로 정겨운 옛 마을을 잃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밖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 이웃과 안부를 전하며 '정'을 나누던 그 모습까지도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우리 나라의 옛 도시 형태인 '마을'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100년의 시간이 중첩된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마을이지요.
도심 속 골목 골목의 정취를 느끼고, 사진으로 즐거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여러분께 꼭, 한번 쯤은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리는 장소입니다.
# 근현대 100년
# 서울의 기억
# 아날로그 감성
# 살아있는 박물관 마을
마을은 16개동의 마을전시관, 9개동의 체험교육관, 9개동의 마을창작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여 있는 40개의 동이 모두 다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돈의문박물관마을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철거 되면서 '돈의문'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조선시대 골목길, 한옥, 근대건축물, 필지 등 '돈의문 성곽마을'은 고스란히 유지되어 왔습니다.
지역의 고유자산을 보존하고 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역사문화자원이 살아 숨쉬는 돈의문박물관마을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사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이웃한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더불어 2003년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기존 건물의 전면 철거 후 근린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흘러간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을 품고 있는 이 동네를 획일적으로 철거하고 개발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고, '철거가 아닌 도시 재생'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2015년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문화 마을을 조성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마을전시관, 체험교육관, 창작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슨트 투어
마을 예술 감독 김문영 동국대 교수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테마 전시관으로,
대부분 식당으로 바뀐 새문안 동네에 몇 안남은 주택 중 하나였던 마을마당 동쪽 이층집에 조성되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 운동가, 그리고 특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 분들을 소개하는 곳으로 독립운동가 방과 응접실도 재현되어 안으로 들어가서 실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곳은 돈의문 구락부입니다.
구락부가 무슨 뜻일까요? 저에게도 굉장히 생소했던 단어라, 뭘까 궁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구락부란 '클럽club'을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근대 사교모임을 말합니다.
이 공간에서는, 시민들이 근대 사교모임의 분위기를 느끼고,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20세기 초 무도 열풍을 일으킨 '무도학관'은 사교모임으로 이용되었던 공간 답게,
화려한 조명, 강렬한 색감의 벽지, 각종 음향기기, 다양한 조형물이 돋보이는 곳입니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돈의문마을에 주소지를 두었던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인 '부래상'
국민음료 커피.
커피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전후 서울에서 땔감시장을 운영하던
프랑스 상인이자 돈의문박물관마을 주민이었던 부래상의 이야기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부래상은 나무꾼들을 커피로 유혹했던 사람으로,
텃세가 센 전통시장에서 커피로 나무꾼을 사로잡은 뛰어난 사업가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죠.
미국인 '테일러'
조선의 자동차 딜러 였던 미국인 윌리엄 W. 테일러는 'W.W 테일러상화'에서
수입잡화, 자동차 판매와 수리, 영화배급, 보험 및 선적 대행, 통신주문판매 등
서양의 진기한 품목을 중개하는 일을 했던 외국인이었습니다.
또, 조선에서 최초로 자동차 영업을 창시한 사람으로, 당시 한국 자동차 보급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죠.
그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었습니다.
그의 골동품점은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진귀한 물품들을 알리는 역할이자,
결과적으로 근대기 한국 유물이 해외로 유출되는 경로가 되었죠.
2층에는 소규모 연회장
2층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소규모 연회장을 재현한 이 공간은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북클럽, 소모임 등
회의 장소나 강의 장소로 대관하고 있으며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비운의 대문.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이라 불리는 돈의문.
우리에게 돈의문은 서대문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합니다.
돈의문은 한양을 감싸던 4개의 대문 중 하나로, 1396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만들어졌는데요,
돈의문은 1396년 태조 이성계가 만든 4개의 대문 중 하나로, 한양의 서쪽을 지키는 문이었습니다.
당시, 문들은 수도 방위뿐만 아니라 수도의 치안을 유지하고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1413년 태종 때 경복궁의 지맥을 해친다는 이유로 폐쇄되었고,
풍수지리적인 문제로 위치를 조금씩 옮겨, 헐렸다가 두 차례 새로 지어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다시 세워진 돈의문은 현재 정동 사거리에 새롭게 자리잡게 되었고,
그 후 돈의문은 한성에서 평안도 의주까지 이르는 제1간선도로의 시발점이자,
외교 사절이 오면 국왕이 직접 마중을 나가는 나라의 중요한 문으로
인정(밤 10시)에 닫고 파루(새벽 4시)에 열리며 490여 년간 서쪽 대문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15년, 돈의문은 형체도 없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당시 일제의 경성도시계발계획에 따른 전차의 복선화로 인해 강제로 헐린 것이죠.
게다가, 총독부 토목국 조사과에서는 강제로 헐린 돈의문을 두고 경매를 진행해 이익을 남겼으며,
돈의문의 석재와 목재뿐 아니라,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성벽까지 무너뜨려
도로 공사 자재로 사용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성곽도시였던 옛 서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죠.
현판과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돈의문의 옛 자리에는
현재 돈의문 터라는 표식만 있을 뿐이고, 과거 문화유산의 복원과 현실의 타협 사이에서 돈의문 복원은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져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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